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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이엄 산책 : 가나아트센터

정규재 작가의 ‘조형사진-일어서는 빛’ 전시
길고 가늘게 그리고 아래위로 짜깁기한 작품세계

이희경(leeheekyoung@hotmail.com)

2018-03-13 페이스북 트윗터 kakao 목록 보기

 

갱년기와 사춘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던데 모두 다 남의 집 이야기인가 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마치 작품 ‘질풍노도의 시기’의 리허설을 하는 아들과 갱년기 몸 풀기에 들어간 나와의 신경전에서 항상 패자는 나다. 부딪히고 돌아서면 안쓰러운 마음에 금세 컴퓨터를 뒤져 아이의 어릴적 사진을 찾아 예뻤던 기억만을 소환해 먼저 손을 내밀게 된다.

 

오늘 아침도 어김없이 아들과의 힘겨루기 한 판을 끝내고 울적한 기분을 전환할 겸흥미로운 전시회를 열고 있는 ‘가나아트센터’로 발길을 옮겼다.

 

 

평창동에 위치한 가나아트센터

1998년 개관 이후 국내외 다수 작가 작품전

 

가나아트센터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다. 결혼하기 전, 정릉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나에게 평창동은 북악터널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게 느껴지지만 드라마 속에서 흔

히 묘사되듯 부유한 동네라는 편견 때문에 왠지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강산이 두세 번 변하는 세월이 지나고 나니 언덕을 따라 고개를 삐죽이 내민 다양한 형태의 단독주택들이 오히려 옛 동네마냥 정겹게 느껴진다. 단독주택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아트센터는 좌우로 쭉쭉 뻗은 직선적인 느낌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언덕의 높이에 맞춰 층고를 달리해서인지 홀로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2000년에 독일의 건축전문기관인 타슈(Tasche)로부터 밀레니엄 건물로 선정되기도 했던 이 건물은 인천공항 제 1터미널을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한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를 했다. 제대로 된 화랑이 없던 1980년대 초, 인사동 한 귀퉁이에 인사화랑을 열면서 미술계에 뛰어든 이호재 회장이 처음부터 다시 차근 차근 시작한다는 의미로 ‘가나아트센터’라 이름 지은 이 곳은1998년 개관한 이래 다수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정규재 작가의 조형사진-일어서는 빛과 만나다

길고 가늘게 자른 짜깁기 통해 새로운 이미지 재창조

 

이번에 열리는 전시회는 정재규 작가의 개인전 “조형사진-일어서는 빛”.

 

작가는 1970년대 말에 프랑스로 건너가 약 40여년을 그 곳에서 거주하며 주로 사진을 소재로 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을 5~10mm 사이즈로 가늘고 길게 자른 뒤 무채색의 포장지와 한 올 한 올 교차하며 짜집기 해 만들어 내는 그의 작품에서 기존의 사진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로 재창조된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담거나 정보를 전달할 때 찍는 사진은 그대로 하나의 변하지 않는 정형화된 이미지로 남는다. 작가는 이러한 ‘보여주는 것을 보는 것’에 대한 정형성에서 탈피해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를새롭게 보는 방식을 제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1층 전시실에서 만나게 되는 마르셀 뒤샹의 ‘샘’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1910년대에 프랑스 작가 마르셀 뒤샹은 남성 소변기를 90도로 뒤집어 받침대에 올려놓은 후 ‘샘 (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회에 출품했다.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의 시작을 알린 이 작품은 장난으로 치부되면서 전시회에서 퇴짜를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변기가 돼 현대미술사를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실제로 마르셀 뒤샹의 작품세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는 ‘레디메이드’ 되어 있는 뒤샹의 소변기사진을 가늘고 길게 잘라 광주리 짜듯 한 올 한 올 짜집기해 100년 만에 새로운 ‘샘’을 탄생시켰다.

 

 

작품 경주아래 윗 어긋난 배치로 역동성 연출

수직과 수평 반복 통해 추구한 그것은?

 

2층에서는 조금 더 대담하게 변형된 사진을 볼 수 있다.

 

불국사의 사진을 모티브로 한 작품 ‘경주’에서는 기다란 사진을 아래위로 어긋나게 배치해 화면 위에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불국사를 담은 사진은 경주 남산을 표현한 듯 유려하게 굽이치는 산새가 되었다가 천년고도로서 다사다난했던 세월을 살아 온 흔적이 나이테처럼 새겨진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제 화면 위에 머물러 있던 사진은 기다란 나무 막대기로 옮겨 가 입체적인 모습을 띈다. 사진을 잘라서 나무 막대기의 세 부분에 붙인 작품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보여 지는 모습이 서로 달라 3차원적인 착시효과 마저 느껴진다. 막대기를 이어 붙인 후 꽈배기처럼 꼬아 천정에 부착시켜 놓은 작품에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붙여 놓았다. 천천히 돌아가는 그의 작품 속에서 미인은 앞태도 뒷태도 모두 곱다.

 

사진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보니 얼마 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또 하나의 사진 작품이 떠올랐다.

 

세계 명소의 24시간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 것으로 유명한 스티브 윌크스의 작품인데 한 곳에 카메라를 고정해 30시간 넘게 낮과 밤의 모습을 찍은 후 편집한 사진은 그 자체로 마치 한 편의 서사시를 보는 듯하다.

 

같이 작품을 감상하던 관람객들 중 여자 스님도 두 세분 끼어 있는 중년여성의 그룹이 단체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각기 다른 작품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그 중 한 분이 정재규 작가 동생의 부인이었다.

 

작품 활동을 위해 종일 서서 몇 시간씩 일을 한다는 시아주버니를 애틋해 하면서 현재 항암치료 중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한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영상 속에서 작가는 모자를 쓰고 있다. 작가의 쾌유를 빌며 그의 신선한 작품세계가 계속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갤러리를 나와 집에 가기 전, 소싯적에 가나아트센터에서 평창동의 전망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곤 했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나 3층에 있는 까페 모뜨로 향했다.

 

차가운 날씨 탓에 야외에서 전망을 즐길 수는 없었지만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실내에서 바라보는 바깥풍경도 조금 비싼 커피 값으로 쓰려진 속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조용한 창가에 앉아 작품 활동을 위해 작가가 보냈을 고독했을 시간들을 생각해 보았다. 수직과 수평으로 반복되는 무수히 많은 짜집기를 하며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무념무상의 상태 그 자체로 하나의 명상이 되는 시간. 어쩐지 아까 본 영상 속 작가의 눈빛은 오랜 시간 수행을 해 온 구도자처럼 맑고 순수했다.

 

오늘은 나도 컴퓨터 속에서 잠자고 있던 아들의 사진을 인화해 가늘고 길게 잘라 작가의 작품을 모방해 보아야겠다. 아마 나만의 소중한 작품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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